2강 현상으로 보여주기, 반어법

카피라이터 출신 작사가가 알려주는 작사법으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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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5, 2025
2강 현상으로 보여주기, 반어법

■ 혓바늘

 

이별은 혀끝까지 따라오나 봐

작은 송곳처럼 네가 돋아나

말할 때도 먹을 때도 자꾸 걸리고

때론 아프고 쓰립기도 해

네 이름 위에 다른 이름 덮어보아도

여전히 혀끝에 맴을 도는 너

언제쯤 사라져 줄래 언제쯤 없어져 줄래

얼마나 앓아야 넌 만족하겠니

이제야 잊었나보다 이제 널 지웠나 보다

얼마나 아픈 줄 아니 널 나은 척하기가

 

■ 가사 소개

 

혓바늘이 돋은 날 연고를 바르다가 떠오른 노래다. 주제에서 소재를 찾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소재에서 주제를 연상했다.

■ 가사 분석

 

이별은 혀끝까지 따라오나 봐

작은 송곳처럼 네가 돋아나

말할 때도 먹을 때도 자꾸 걸리고

때론 아프고 쓰립기도 해

▶ 벌스: 연인과의 이별이라는 선행사건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혓바늘이 돋았다. 아프고 쓰린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고통이기도 하다.

 

네 이름 위에 다른 이름 덮어보아도

여전히 혀끝에 맴을 도는 너

 

▶ 프리코러스: ‘너’를 잊으려고 다른 사람을 만나서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도 문득 ‘너’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그리움’이라는 추상적인 정서를 구체적인 말과 행위로 표현했다.

 

언제쯤 사라져 줄래 언제쯤 없어져 줄래

얼마나 앓아야 넌 만족하겠니

이제야 잊었나보다 이제 널 지웠나 보다

얼마나 아픈 줄 아니 널 나은 척하기가

▶ 코러스: 반어법으로 이별의 아픔을 강조했다. 진짜 속마음은 ‘어서 돌아와 줘’이다. ‘나은 척 하기’가 곧 ‘아프다’는 역설법도 사용되었다.

■ 현상으로 보여주기

 

‘현상으로 보여주기’는 원관념의 결과를 객관적, 물리적 현상으로 보여주는 기법이다. ‘살이 쪘다’라는 원관념은 ‘바지가 안 맞는다, 반지가 손가락에 안 들어간다, 배꼽이 안 보인다,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등 다양한 현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 지구가 태양을 네 번 감싸 안는 동안 _넬, 「지구가 태양을 네 번」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떤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구가 태양을 4번 공전할 수 있다. ‘공전’ 대신 ‘감싸 안는다’라는 표현을 써서 따뜻하게 포옹하는 느낌을 살렸다.

 

□ 2월 29일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4년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현상이다. 2월 29일은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에만 있는 날이다. 그밖에 ‘대학교 신입생이 졸업생이 될 때까지’, ‘아카시아꽃이 4번 피고 지는 동안’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 달빛 아래 두 사람 하나의 그림자 _성시경, 「두 사람」

 

달빛 아래 두 사람이 서로 안고 있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합쳐지면서 ‘하나의 그림자’로 보일 것이다. 최소한의 단어로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게 한다.

 

□ 어느새 길어진 그림자를 따라서 _박효신, 「눈의 꽃」

 

해가 지면 그림자가 길어진다. 반대로 낮이 되면 그림자가 짧아진다. ‘날 뒤쫓던 나보다 키 큰 그림자/어느덧 햇살에 작아져 가고’라는 가사는 과거의 어두운 상처를 극복하고 밝음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현상으로 표현했다(오펜, 「겨울아 안녕」).

 

□ 네가 없는 데도 해는 뜨고 또 지고 _임창정, 「그때 또 다시」

 

이별 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하나의 현상이다. 위 가사는 박주연 작사가가 다시 쓴 것이다. 가수 임창정이 작사한 원래 가사는 ‘널 사랑하지만 나는 안 되나봐요’였다. 확실히 프로 작사가가 남다른 표현력을 느낄 수 있다.

 

□ 한참 울었거든 샤워실에서, 비누에 붙은 너의 머리카락을 떼며 _에픽하이, 「연애소설」

 

함께 살던 여자가 떠나면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냥 ‘너의 머리카락’은 지저분한 느낌을 주지만, ‘비누에 붙은 너의 머리카락’은 애절한 느낌을 준다. 공감의 신은 디테일에 숨어있다.

■ 반어법

 

□ 언제쯤 사라져 줄래 언제쯤 없어져 줄래

 

반어법이란 속뜻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겉으로 모순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설법과 다르다. ‘사라져 줄래(표현)’는 곧 ‘돌아와 줄래(속뜻)’라는 의미다.

 

□ 울고 싶지 않아 울고 싶지 않아 눈물은 많지만 울고 싶지 않아 _세븐틴 「울고 싶지 않아」

 

마음으로는 울고 싶지만(속뜻)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표현). 우리는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에 ‘상황’과 반대인지 판단해야 한다. AABA구조로 리듬감을 형성한다.

 

□ 사랑하지 않기로 했어 나만 생각하기로 했어 _임한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어」

 

사실은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속뜻). 그러나 너를 떠나야 하기에 사랑하지 않기로 한다(표현). ‘사랑해서 떠난다’라고 속내를 드러내면 겉으로 모순이 드러나므로 역설이 된다.

 

□ 오펜, 「기분 좋은 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아버지가 통닭은 사 오신 날은 사실 평소보다 힘든 날이다(속뜻). 그러나 제목은 기분 좋은 날이다(표현). 상황과 표현이 반대다.

 

□ 선 넘지 마 사실은 나 두려워 _오펜, 「선 넘지마」

 

여사친에게 이성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한번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기에 선을 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표현). 하지만 속으로는 상대가 넘어와 주기를 기대한다(속뜻).

 

□ I'm Fine 난 괜찮아 Thank U 그동안 고마웠어 And U 너는 어떻게 지내니 _오펜,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이별한 후 사실은 괜찮지 않고, 네가 원망스럽지만(속뜻), 막상 너를 만나니 반대로 괜찮고 고맙다는 말만 떠오른다(표현). 마치 기초 영어 회화처럼.

 

□ 이 아이를 기억하지 마세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카피다. 이어지는 카피는 다음과 같다. ‘이름도, 나이도, 어디가 아픈지도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돕지 않는다면 어차피 세상을 곧 떠날 아이니까요’’ 이 아이를 반드시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반어법으로 강조했다.

■ 「혓바늘」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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