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이미지 병치혼합, 통념 부정하기

카피라이터 출신 작사가가 알려주는 작사법으로 카피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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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5, 2025
3강 이미지 병치혼합, 통념 부정하기

■ 기분 좋은 날

 

오늘은 퇴근길에 통닭​을 샀어요

먹을 입이 많아 두 마리 샀지요

묵직한 비닐봉투 손가락 파고들고

오르막 비탈길을 올라갑니다

이제야 알아요 어릴 적 아버지

술 냄새 풍기며 사 오신 통닭​​

그날은 좋은 날이 아니라

평소보다 힘든 날이었단 걸

이제야 알아요 어릴 적 아버지

일부러 골라 드신 가슴살

목메어 콜라 드신 게 아니라

삶이 퍽퍽해 그랬다는 걸

■ 가사 소개

 

다이어트 기간에 닭가슴살을 먹다가 인터넷에서 본 사연이 떠올라서 쓴 노래다. 원래 제목은 「닭가슴살」이었다가 수정했다.

 

■ 가사 분석

 

오늘은 퇴근길에 통닭​을 샀어요

먹을 입이 많아 두 마리 샀지요

묵직한 비닐봉투 손가락 파고들고

오르막 비탈길을 올라갑니다

▶ 벌스: 가장이 된 화자가 퇴근길에 통닭을 사 간다. 첫 장면에서 화자의 상황, 심리, 시공간적 배경 등의 정보가 전달된다.

 

이제야 알아요 어릴 적 아버지

술 냄새 풍기며 사 오신 통닭​​

그날은 좋은 날이 아니라

평소보다 힘든 날이었단 걸

 

▶ 코러스1: 프리코러스 없이 곧바로 코러스로 연결된다. 이는 첫 번째 코러스가 ‘깨달음’이라는 프리코러스의 역할을 겸하기 때문이다(정서).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신 날은 기분이 좋으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보니 그날은 평소보다 힘든 날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야 알아요 어릴 적 아버지

일부러 골라 드신 가슴살

목메어 콜라 드신 게 아니라

삶이 퍽퍽해 그랬다는 걸

 

▶ 코러스2: 코러스를 비슷한 구조로 반복했다. 아버지는 다른 식구들이 퍽퍽하다고 싫어하던 닭가슴살을 일부러 골라 드셨다. 퍽퍽한 닭가슴살과 아버지의 힘든 인생이 닮았다. ‘골라 드신’과 ‘콜라 드신’에서 라임을 맞췄다.

 

■ 이미지 병치혼합

 

아르페지오는 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분산화음 주법이다. 기타나 피아노 등의 악기에서 많이 사용된다.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면 각 음의 잔향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사운드의 병치혼합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글쓰기에도 아르페지오처럼 이미지 병치혼합 기법이 사용된다. 한 장면을 글로 표현하려면 많은 정보를 마치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순차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중고로 자동차를 판다고 가정해 보자. 앞면, 뒷면, 운전석, 트렁크 등을 각각 찍어서 올려야 한다. 분산된 정보는 구매자의 머릿속에서 하나로 재구성된다.

 

「기분 좋은 날」의 벌스 각 행을 아르페지오의 한 음이라고 생각하고 이미지 병치혼합 기법을 분석해 보자.

 

□ 오늘은 퇴근길에 통닭을 샀어요

 

‘퇴근길’이라는 단어에서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양복 차림의 직장인이 연상된다. ‘치킨’이 아닌 ‘통닭’이 감성을 자극한다.

 

□ 먹을 입이 많아 두 마리 샀지요

 

‘먹을 입’을 한자로 표현하면 ‘식구(食口)’다. 통닭을 두 마리나 산 것을 보면 식구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먹을 입’이라는 표현은 배우자나 부모보다 주로 자식에게 쓴다.

 

□ 묵직한 비닐봉투 손가락 파고들고

 

묵직한 비닐봉투는 통닭의 무게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이기도 하다. 비닐봉투는 소비를 할 때 사용된다. 손가락을 파고드는 비닐봉투는 숨 막히는 경제적 압박감을 의미한다.

 

□ 오르막 비탈길을 올라갑니다

 

화자의 집이 형편이 어려운 달동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르막 비탈길은 화자가 헤쳐나가야 할 힘든 인생길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올랐던 비탈길은 이제는 성인이 된 화자가 오른다.

 

가사의 첫 부분은 화자의 상황 및 시공간적 배경을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때 이미지 병치혼합 기법이 사용되었다. 문장 하나하나는 코드(Chord)를 이루는 구성음과 같다. 문장은 청자의 머릿속에 이미지의 잔상을 남긴다. 잔상과 잔상이 쌓여서 어우러지면 ‘벌스’라는 하나의 장면, 이미지의 화음이 된다.

 

■ 통념 부정하기

 

통념 부정하기는 대상에 대한 통념 즉, 고정관념을 부정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기법이다. ‘A는 B가 아니라 C다’라고 도식화할 수 있다. 이때 대상의 주된 속성을 부정하고, 부수적인 속성이나 반대 속성으로 재정의하면 참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 아내는 여자가 아니라 여신이다 _아나운서 도경완

 

좋은 문장은 고정관념을 깨고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위 문장은 아내가 여자라는 당연한 통념을 부정하고 여신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여자’와 ‘여신’의 라임에 주목하자.

 

□ 창의력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有)에서 뉴(New)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쓴 카피다. ‘창의력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흔한 문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有)’라는 글자에 ‘ㄴ’만 살짝 덧붙이면 ‘뉴(New)’라는 새로운 글자가 된다.

 

□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_노사연, 「바램」

 

주된 속성을 부정하고 부수적인 속성으로 재정의했다. 늙어가는 것은 육체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만(주된 속성),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부수적 속성).

 

□ 그대가 날 보내고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그대 맘에 묻어두려 했다는 걸 _양파, 「A’D DIO」

 

이별이란 것은 상대를 떠나가는 것이다(주된 속성). 한편으로는 떠난 상대를 기억하는 것이다(부수적 속성). 부수적 속성에 주목해서 이별을 ‘떠나감’이 아닌 ‘묻어둠(기억)’으로 표현했다.

 

□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나봐요 _넬, 「멀어지다」

 

사랑에는 즐거움(주된 속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수록 독점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부수적 속성).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자기 부정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인 통념 부정이다.

 

□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_악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이별까지 사랑하겠다’는 대중가요의 흔한 클리셰다. 통념을 깨고 내가 사랑한 것은 ‘이별’이 아니라 ‘너’였다고 재정의한다.

■ 「기분 좋은 날」 노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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